제자들의 발을 씻으심 & 가룟 유다 & 새 계명 - 아가페 사랑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1-2)
예수님께서 곧 죽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실 때가 되어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다고 한다.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12명의 제자를 세우시고 저들과 항상 함께하시며 하나님 나라와 진리를 가르치시며 예수님께서 본을 보여주신 대로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하며 제자 삼는 자들이 되도록 훈련하시고 사랑해 주셨다. 그리고 이제 저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저들의 주와 선생님으로 저들을 얼마나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심으로 보여주신다. 제자들 한 명 한 명 앞에 나가 겸손히 종의 모습으로 저들의 더러운 발을 물과 수건으로 깨끗하게 닦아주시는 섬김으로 저들을 사랑해 주신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표현은 가룟 유다를 향한 사랑도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자임을 아셨다. 유다가 예수님을 잘 따라다녔지만 실제로는 하나님도 예수님도 믿지 않고 돈을 우상으로 섬기며 도둑질하고 모두를 속이는 위선적인 삶을 사는 것을 예수님은 아셨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다른 제자들과 다르게 대하지 않으셨다. 가룟 유다도 예수님께서 자기에 대해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그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가룟 유다가 자신을 배반하고 팔 것을 아시면서도 끝까지 그의 발을 닦으시며 다른 제자들과 똑같은 사랑을 베풀어 주신다. 가룟 유다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안타까움과 측은함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그런 마음과는 달리 가룟 유다는 자신의 마음을 이미 사탄에게 빼앗겨 버렸다. 사탄이 그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었다. 사탄은 가룟 유다가 그 무엇보다 돈을 가장 많이 사랑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가룟 유다의 마음은 이미 돈에 대한 욕심과 그것을 채우기 위해 반복해서 돈을 훔치는 죄로 인해 강퍅해질 대로 강퍅해져서 사탄의 도구가 되기에 충분했음이 분명하다. 그는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따르고 예수님의 모든 표적과 모든 말씀과 가르침을 받았지만, 죄로 인해 강퍅해진 그의 마음은 길가와 같아서 예수님께 받은 생명의 씨앗들을 모두 사탄에게 빼앗겨버려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고 빛을 따라다녔음에도 구원받지 못하는 가장 어리석고 불쌍한 자가 되었다.
저녁을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4-5)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이 땅에 오셨지만, 전에 예수님께서 이 일에 대해 마음이 괴롭다고(12장 27절) 친히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일을 감당하셔야 하는 시간 바로 앞에 계신다. 예수님은 오로지 자신의 순종으로만 감당하여 이룰 수 있는 일이기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예수님 손에 맡기신 것과 십자가를 지신 후에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신다. 이제 제자들과 마지막 시간을 보내시며 예수님께서 제자들 한 명 한 명의 발을 친히 씻어주시고 수건으로 닦아주신다. 종이 아니고는 누구도 하려고 하지 않는 가장 낮은 자의 일을 선생님이신 예수님께서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런 갑작스러운 행동을 보고 제자들이 놀랐을 것이다. 예수님 앞에 자신의 더러운 발을 내어놓은 것조차 부끄럽고 미안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예수님께서 자기들의 발을 닦아주시는 모습 속에 담긴 예수님의 교훈을 어렴풋이라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자신보다 낮은 자 앞에 자신을 더 낮추어 섬기는 사랑을 경험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겸손하심에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마태복음 20장 26-27절에 "누구든지 너희 중에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누구든지 너희 중에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제자들 모두 큰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있음을 아시기에 몸소 제자들에게 겸손과 섬김과 사랑을 마지막으로 보여주시며 가르치시는 것이다.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8-9)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발을 씻어주시려고 하자 베드로가 자신의 발은 씻지 못하신다고 거부한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발을 씻어주시지 않으면 예수님과 베드로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시니 이번엔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달라고 한다. 베드로를 수제자로 부르신 이유를 엿볼 수 있는 장면 같다. 예수님을 향한 베드로의 마음이 정말 큰 것 같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래서 예수님의 좋은 제자로서 예수님을 잘 섬기고 싶은 마음도 커보인다. 선생님이신 예수님께서 자기의 발을 씻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믿으니 “절대로” 안 된다고 크게 반대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선생님을 높여드리는 좋은 제자의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상관이 없다고 하시는 말에 망설임도 없이 바로 발을 내밀고 손과 머리까지 씻어 달라고 한다.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것과 예수님의 뜻을 알고는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보다 더 많은 순종을 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아직은 거듭나지 못해 진리와 영적 세계의 일에 대해 알지 못하는 제자의 무지한 믿음과 사랑과 섬김의 마음이지만 예수님을 향한 베드로의 진심은 잘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자기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것에 대해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알게 될 거라고 말씀하신다. (7)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지만 거듭나지 못해 참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베드로처럼 육에 속한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 많다. 또한 거듭나고도 자라지 못해 늘 영적 어린아이로 남아 하나님께서 옳게 여기시는 일을 자신이 옳지 않다고 믿으면 하나님을 위한다며 절대로 안 된다고 고집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씀을 자기 뜻대로 해석하여 하나님께 충성한다며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것들을 오버해서 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진리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죽고 그리스도가 그의 안에 사심으로 더 이상 자기 뜻이 아닌 그리스도의 뜻대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뜻대로 말씀을 해석하는 것이 아닌 성령님께서 말씀을 가르쳐주시는 대로 깨닫고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고 딱 성령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것만 순종하는 삶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시니라 ( 10-11)
자기 손과 머리까지 씻어달라는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베드로는 이미 목욕해서 온몸이 깨끗해졌기 때문에 발만 씻으면 된다고 하신다. 아직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지 않으셔서 아무도 거듭남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유다를 제외한 11명의 제자 모두가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날 것을 이미 아시기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온몸이 깨끗해졌다는 것은 죄 사함을 받아 죽음의 권세에서 자유를 얻었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모든 죗값을 치러주셨음을 믿고 죄 사함을 이미 받았다는 뜻이다. 요한복음 15장 3절에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비록 제자들이 그동안 예수님께 들었던 진리와 복음의 말씀들을 지금은 깨닫지 못하지만, 그 말씀들이 저들 안에 믿음으로 심겨져 곧 성령님께서 오시면 모든 것들을 깨닫고 죄 사함을 얻어 더 이상 정죄함을 받지 않는 깨끗한 새 생명의 새사람이 될 것이기에 제자들의 온몸이 깨끗해졌다고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모두가 깨끗하지는 않다고 말씀하신 것은 저들 중에 가룟 유다는 죄 사함을 받지 못해 구원받지 못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3-14)
제자들의 발을 다 씻어주신 후에 선생이고 주인 예수님께서 발을 씻어주신 것처럼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본을 보여주신 대로 제자들도 그렇게 하라고 하신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서로 발을 씻어주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낮은 자가 되어 겸손히 서로를 섬기며 사랑하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가르침이 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지금은 깨닫지 못하고 나중에 깨닫게 될 거라고 말씀하신 것인데 제자들에게 서로의 더러운 발을 씻어주라고 하신 것은 서로의 죄를 감당하여 서로 깨끗하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죄 사함을 받아 깨끗함을 입은 크리스천들도 이 세상의 삶을 살 동안에는 죄 된 육신 안에 살기에 여전히 죄를 짓는다. 그 죄는 용서받지 못하고 구원을 잃어버리는 죄가 아닌 예수님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죗값을 치러주셔서 회개함으로 용서받는, 발만 더럽게 하는 죄들이다. 또한 새사람이 된 후에도 여전히 무너뜨리지 못하고 버리지 못한 옛사람의 거짓 자아와 거짓 신념들을 따라 살면서 짓는 죄들이다. 그럼에도 거듭난 크리스천들이 스스로는 자기들의 죄를 잘 보지 못하고 회개하지 못한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 몸의 지체들이 된 거듭난 자들이 이처럼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죄들을 서로가 빛 가운데로 드러내 주고 용서해 주고 용서받으며 함께 거룩함을 이루어 가는 것을 서로의 발을 씻어주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신다. 믿음의 공동체가 이루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거룩함이고 거룩함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죄를 다루고 회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지 않으면 제자들은 예수님과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은 또한 제자들이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발을 씻겨줄 때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모두가 낮은 자가 되어서 서로 죄를 고하고 용서하고 격려하고 서로의 상처를 싸매주며 서로 함께 거룩한 자들로 세워질 때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랑으로 하나 될 수 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16-17)
앞으로 제자들이 서로 발을 씻어주도록 하시려고 예수님께서 친히 본을 보이셨다고 하시면서 종이 주인보다, 보냄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다는 말을 알고 서로의 발을 씻어주면 복이 있을 거라고 말씀하신다. 주인과 보낸 자는 예수님을 의미하고 종과 보냄을 받은 자들은 순종하여 예수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들을 하는 제자들을 의미한다. 요한복음 15장 20절에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이것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대했던 대로 제자들도 대할 거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제자로 예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대로 순종해도 세상에 속한 자들이 예수님을 박해했던 것처럼 제자들도 박해할 것이고 예수님께서 택하신 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지켰던 것처럼 제자들의 말을 지킬 거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세상이나 교회나 죄에 대해 잘 다루지 않는다. 아니, 마지막 때가 가까이 올수록 사람들은 죄에 대해 점점 무감각해지고 관대해지고 세상이 죄로 만연해짐을 보게 된다. 교회 안에도 회개가 사라지고 사랑이라는 이유로, 관계를 깨지 않는다는 이유로, 혹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지 않도록 한다는 이유로 점점 더 서로의 죄를 묵인해 주고 덮어준다. 그래서 죄를 드러내고 죄를 다루는 일이 그때나 지금이나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꺼리고 싫어하는 일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 같다. 서로의 더러운 발을 씻어주듯이 서로의 죄를 씻어주라는 말씀에 순종하려고 할 때 박해를 당할 것을 예수님께서 아시고 미리 말씀해 주신 것이다. 서로의 죄를 깨닫게 해서 회개하도록 하고 서로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죄에서 떠나 거룩함을 이루려고 할 때 박해받는다고 해도 예수님께서도 박해받으셨음을 생각하고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계속해서 순종하라고, 그러면 복을 받게 될 거라고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 (18-19)
예수님께서 때가 되어 가룟 유다에 대해 제자들에게 밝히신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본을 보이신 대로 서로 발을 씻어주라고 명하시며 그렇게 할 때 복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후에 제자들 모두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사실 예수님이 택하신, 예수님을 본받아 순종할 참 제자는 지금까지 동고동락했던 12명 전부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더욱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 택하지 않았지만, 제자들 가운데 있는 그자는 예수님을 배신할 자라는 것도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가 예수님을 배신할 자임에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지금까지 모두와 함께했던 것은 시편 41편 9절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라고 기록된 메시아에 대한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라고 알려주신다. 이제까지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지만, 곧 그 배신자가 예수님을 팔 때가 되었기에 그의 정체에 대해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며 그 일이 일어나면 제자들로 모든 것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이루어지는 것임과 예수님께서 성경에 기록된 메시아이심을 알게 하려고 가룟 유다에 대해 진실을 알려주신다고 하신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20)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제자들을 택하시고 3년 동안 저들을 사랑하시며 가르치시고 친히 본을 보여주신 것은 예수님은 곧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것이기에 저들을 세상에 보내시려 함이다. 예수님께서 저들을 구원하시고 그들로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하게 하심으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저들이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할 때 저들을 영접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과 같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들은 또한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과 같다고 하신다. 복음을 통해 거듭난 자들과 예수님과 하나님이 하나 되는 놀라운 일을 말씀하시며 제자들이 어떤 영광스러운 일을 하게 될지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21-22)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통해서 이루실 일을 말씀하신 후 심령이 괴로워 증원하신다고 하시며 제자들 중에 예수님께서 택하시지 않은, 예수님을 곧 팔자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21절에 심령이 괴롭다고 하신 것은 “troubled in spirit”으로 예수님의 영이 괴롭다고 하시는 것이다. 앞 장에서는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생각하시며 혼이 괴롭다고 하셨다. 예수님의 영이 괴롭다고 하신 것은 가룟 유다를 사랑하심으로 그를 잃을 것에 대해 괴로워하시는 것이 분명하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자임을 아시면서도 그를 끝까지 사랑하시며 안타까워하셨고, 그가 회개하고 구원받지 못하는 것으로 인해 마음 아파하셨다. 마태복음 26장 24절에 가룟 유다를 가리켜 그에게 화가 있을 것이며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저에게 좋았을 거라고 하신 것도 그가 어떤 죽음을 맞을지를 아시며 안타까움으로 하신 말씀이다.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디모데전서 2장 4절) 하나님의 뜻이 곧 예수님의 뜻이기에 가룟 유다가 구원받지 못하고 영원한 죽음에 떨어지는 것에 대해, 또한 다른 제자들에게 가룟 유다에 대한 진실을 밝히셔야 함을 인해 예수님의 영이 괴로워하신 것이다. 성경에 자세히 나오지는 않았지만, 함께 훈련받고 하나라고 여겼던 가룟 유다가 그동안 도둑질을 하면서 모두를 속인 것과 예수님을 배신하고 은 30에 예수님을 판 것과 또한 그 결과 어떠한 죽음을 맞는지를 알게 된 후 제자들이 받을 큰 충격까지 미리 아시고 제자들을 보호해 주시기 위한 것도 가룟 유다에 대해 미리 말씀해 주시는 이유일 것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팔자의 이름은 알려주시지 않아 깜짝 놀란 제자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궁금해한다. 베드로가 요한에게 예수님께 여쭤보라는 신호를 보내자, 요한이 예수님께 그가 누구인지 여쭙는다. (2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26-27)
요한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떡 한 조각을 적셔서 주는 자라고 대답하시고 떡을 적셔 가룟 유다에게 주신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예수님께서 분명히 가룟 유다에게 떡 조각을 주심으로 예수님을 팔자가 가룟 유다라고 말씀해 주시는데도 제자 중에 그것을 알아듣는 자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다. 예수님께서 유다가 예수님을 팔 자라고 밝히시고 그에게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27)라고 하시니 그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유다가 배신자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유다가 회개를 맡았기에 예수님께서 명절에 필요한 것을 사라고 하시거나 가난한 자에게 무엇을 주라 하신 것으로 알아듣는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 제자들은 아직 아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유다는 예수님께서 주신 떡 조각을 받고 그 자리를 나왔다. 사도 요한은 30절에 가룟 유다가 “곧 나가니 밤이러라”라고 기록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등지고 나가는 것을 빛이신 예수님을 떠나는 것으로, 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영원한 죽음에 떨어지는 것으로 비유한 말씀일 것이다.
예수님께서 떡 조각을 적셔 가룟 유다에게 주시고 유다가 그것을 받은 후에 바로 사탄이 유다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하신다. 사탄에게 하시는 말씀일 것이다. 사탄이 유다의 속에 들어가 유다를 도구 삼아 예수님을 팔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어떻게 사탄이 유다 속에 들어갔을까? 왜 유다였을까? 궁금한 것은 많고 성경은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 않는다. 그러니 무리해서 말씀 밖에서 답을 찾으려는 시도는 하지 말아야 한다. 다만 성경에 기록된 말씀으로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것들을 통해 볼 때 유다의 마음은 이미 죄로 가득 차서 사탄이 그 마음에 넣어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고 예수님께서 자신을 배신할 자가 있다고 말씀을 꺼내실 때부터 그의 마음이 심하게 요동쳤을 것이다. 그리고 에베소서 4장 26-27절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라는 말씀과 같이 마침내 예수님께서 적신 떡 조각을 자기에게 건네셨을 때 그의 마음에 품고 있던 분노와 두려움이 폭발하며 사탄에게 틈을 주어 사탄이 그의 마음에 들어갔을 것이다. 하나님이과 예수님께서 구속사를 이루시기 위해 유다를 사탄에게 넘겨주는 희생양으로 삼으셨다는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해서는 안 된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사탄의 도구가 되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쓰임 받는 자로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역사하심 속에 있지만 그가 영원한 죽음을 맞는 것은 그의 죄로 인함이다.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31-32)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의 정체를 드러내셨을 때 사탄이 가룟 유다에게로 들어가고 유다가 예수님을 떠나 나간 후에 예수님께서 남아있던 제자들에게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으셨고, 그로 인해 하나님도 영광을 받으셨다고 말씀하신다. 마치 열쇠를 꽂고 돌렸을 때 철커덕 소리가 나며 열쇠가 돌아가면 문을 열지 않았어도 문이 열렸음을 확신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사탄이 가룟 유다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이끌어 갔음으로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이 확실히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예수님이 받으신 영광이라고 하신다. 온 세상을 위해 자신의 피를 흘려주시고 죽으시는 것이 영광 받으시는 것이라고 하시며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도 영광을 받으신다고 하신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흘려주신 보혈로 이 세상의 죄가 씻김 받는 하나님의 뜻이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심으로 죽었던 자들이 생명을 얻게 되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기에 예수님의 죽음은 영광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영광 받으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도 영광을 주신다고 하신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예수 이름에 주시는 영광을 말씀하신다. 사탄과 그의 모든 일을 멸하시고 모든 만물을 예수의 발 앞에 무릎 꿇게 하시는(빌립보서 2장 10-11절) 영광을 하나님께로부터 곧 받으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3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작은 자들(little children)”이라고 부르신다. 제자 중에 누가 자기를 작은 아이라 생각하겠는가? 저들은 예수님께 선택받아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따르며 모든 것을 경험하고 직접 배운 수제자들이 아닌가? 그런데도 예수님은 저들을 왜 어린아이들이라고 부르신 것일까? 그것은 이제부터 저들이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 곧 영적 세계 안에서 영적 어린아이들로 거듭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그렇게 부르신 이유는 자신이 저들을 떠나셔서 얼마 동안 저들이 목자 없는 양같이 이 세상에 있을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님께서 전에 말씀하신 대로 이제 떠날 시간이 되셨는데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으로 저들이 갈 수 없다고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곧 부활하셔서 승천하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다 이루시고 곧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말씀하신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34-35)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거의 마지막 시간에 제자들에게 명하신다. 새 계명을 준다고 하시며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다. 사랑하라는 말씀이 어떻게 새 계명이 될 수 있는가? 서로 사랑해야 함을 모르는 제자가 없는데 말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이제까지 제자들이 알고 있는 혹은 행하고 있는 사랑과 전혀 다른 사랑이기 때문에 새 계명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 사랑은 세상이 그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알 수 있게 하는 사랑이라고 하신다. 예수님께서 명하신 사랑은 세상에는 없는 사랑이라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그 사랑을 받을 수도, 베풀 수도 없다. 그 사랑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셔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신 그 사랑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아가페 사랑이다. 생명을 살리고 영생을 주는 구원의 사랑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거듭난 자들, 곧 예수님의 몸 된 지체들만이 행할 수 있는 사랑이다.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자들 가운데 아가페 사랑을 넘치도록 부어주셔서 저들도 서로 아가페 사랑을 할 수 있게 해주실 것이기에 예수님께서 저들에게 이제는 아가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명하신 것이다. 거듭난 자들이 아가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그것은 서로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랑이 아닐까? 하나님의 뜻대로 서로 거룩함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것이 가장 큰 아가페 사랑이 아닐까? 그 사랑이 바로 서로의 발을 씻어주는 것이다. 세상은 할 수 없는 서로의 죄를 사해줌으로 거룩해지도록 서로를 온전하게 세우는 사랑이다.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7-38)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묻는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에 지금은 그가 따라올 수 없다고 대답하신다. 이에 베드로가 어찌 따라갈 수 없냐며 자신은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버리겠다고 한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믿으며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예수님을 보호하고 예수님을 위해 죽기까지 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그의 진심이다. 문제는 베드로는 자기가 죄 된 사람이라는 것과 자기가 자신 있게 말하는 그것들을 정말로 이룰 수 있는 의지와 능력과 사랑과 담대함과 의로움이 죄인인 자기에게는 없다는 것을 아직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영으로 사랑하고 참으로 본받고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거듭나 하늘에 속한 삶을 사는 성령 중만을 받는 자이다. 베드로는 실제로 예수님을 위해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 죽는다. 자신이 한 고백을 이룬다. 마침내 베드로가 예수님을 위해 죽음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예수님 앞에 예수님을 위해 죽겠다고 자신 있게 소리치며 나서는 자아가 죽고 예수 그리스도가 그 안에 사실 때, 성령을 따라 살며 성령 충만을 받을 때 비로소 이룰 수 있었던 일이다. 이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닭이 울기 전에 베드로가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할 거라는 말씀으로 베드로에게 답하신다. 베드로가 자신도 모르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하고 닭 울음소리를 들은 후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자기의 죄 된 더럽고 추하고 비참한 자아를 직면해야만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거듭난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