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음 & 나귀 새끼를 타심 & 세상은 구원하시고 사탄은 심판하심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순전한 나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3)

 

유월절을 6 앞두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베다니 나사로의 집을 방문하셨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일로 예수님을 위해 잔치가 열렸다. 나사로는 예수님과 제자들과 함께 앉아 있고 마르다는 여느 때와 같이 부지런히 잔치 음식을 준비한다. 마리아가 비싼 향유를 들고 예수님이 앉으신 곳에 나타난다.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다가가서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의 머리를 풀어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기 시작한다. 집에 향유 향기가 가득하다. 300 데나리온은 당시 보통 사람이 동안 일을 해서 받을 있는 품삯이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을 씻기기 위해 부은 향유는 300데나리온의 가치가 있을 만큼 비싸고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마리아에게는 비싼 향유보다 그것을 예수님의 발에 붓고 예수님의 발을 씻겨드리는 것이 값진 일이다. 예수님을 향한 마리아의 마음이 드러나는 행동이다. 마리아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귀한 것을 예수님에게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을 것이다. 마리아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자였고 게다가 예수님은 자신이 사랑하던 죽은 오빠를 살려주신 분이시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고 감사하며 예수님을 위해 무엇이든 해드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마리아를 하나님의 일에 동참시키신다. 하지만 마리아의 행동을 지켜본 제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국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은 것을 훔쳐 감이러라 (5-6)

 

제자들은 마리아의 행동이 경솔하다고 생각했던 같다. 비싸고 귀한 향유를 더러운 발을 씻느라 사용하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중에 가룟 유다가 마리아를 책망한다.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은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이다. 향유를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어야 한다고 말한다. 유다의 말은 그럴싸하다. 그곳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은 유다의 말에 공감했을 것이다. 모두가 귀하고 비싼 향유를 팔아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이 훨씬 선하고 합당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했을 것이 분명하다. 아무도 그런 말을 유다의 진짜 마음과 숨겨진 동기 알지 못한다. 유다는 가난한 사람을 위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성경은 유다가 말을 진짜 이유는 유다가 돈을 훔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고 밝힌다.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 회계를 맡은 자였고 그동안 돈을 관리하며 아무도 몰래 돈을 훔쳤다. 유다는 도둑이었기에 비싼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씻는 마리아를 보고 욕심 때문에 화가 나서 말이다. 자신이 도둑이라는 것을 모두에게 숨기기 위해, 마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는 것처럼 거짓말로 포장한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7-8)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신 것을 없어서 마리아의 행동을 제대로 이해할 없지만 마리아의 행동은 단순한 것이 아님을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해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마리아를 사용하셔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 것을 미리 드러내시고 준비하게 하신 것이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부은 향유는 죽은 사람을 장사할 몸에 바르는 향유이다. 세상 사람들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마리아로 예수님의 장례를 위하여 오늘까지 향유를 준비하고 간직하게 하신 것이다. 마리아를 비롯해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했지만, 마리아의 행동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하나님의 일에 도구로 사용하신 것이다. 육의 눈으로 보기에는 가룟 유다의 말이 맞는 같지만 가룟 유다의 속셈과 영적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마리아의 행동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적인 일임을 있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들은 저들과 항상 함께 있지만 예수님은 저들과 항상 있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심으로 자신이 죽게 것을 미리 말씀하신다. 마리아가 이때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것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 향유를 사용하는 것에 관해서 예수님도 좋게 여기신다. 그리고 마땅히 가난한 자를 돌봐야 함을 말씀하시지만, 마리아의 행동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니 마리아의 행동을 용납하라고 좋게 말씀해 주신다.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 후에 모두 마리아의 행동을 이해하게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는 예수님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그분을 외면하며 홀로 길을 걸어가시게 했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과 동행하시며 마리아를 통해 장례를 준비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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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그룹으로 나눌 있다. 그리고 지금도 교회 안에 그룹의 사람들이 있음도 발견할 있다.

·        번째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마르다, 나사로, 제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다. 하지만 아직 영적 삶을 살지는 못하는 사람들이다. 교회에 다니고 믿음 생활을 하지만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과 같다.

 

·        번째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마리아이다. 아직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지 않았기에 마리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거듭나지 못했지만, 본문 말씀에서는 분류에 속한 사람의 역할을 감당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사람이다. 자신은 죽고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어 영적인 삶을 살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사는 사람이다.

 

·        번째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가룟 유다와 예수님을 죽이려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다. 하나님도 예수님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육에 따라 육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 죄를 짓고, 사탄의 종노릇하며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제자로 영적 지도자로 교회 안에 거하며 거짓으로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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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유대인이 나사로의 집에 예수님이 계신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다. 예수님을 보기 원함이고 죽음에서 부활한 나사로도 보기 원함이다. 나사로를 살리신 표적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알게 대제사장들은 이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것은 물론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한다.

 

이튼날에는 명절에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12-13)

 

마르다의 집에서 잔치가 열린 다음 명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모인 무리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향한 그들의 믿음과 기대가 절정에 이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표적들과 영적 권위의 말씀을 목격하고 들었던 저들이 죽은 나흘이나 나사로를 살리셨다는 소식까지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사로의 부활 소식은 예수님께서 저들이 기다리던 메시아임이 분명하다는 확신을 주기에 충분하다. 유대 영적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잡도록 도우라고 명령 따위는 상관하지도 않을 만큼 저들은 예수님이 저들을 구원해 메시아라는 믿음으로 흥분한다. 죽은 자도 살리셨고, 예수님을 죽이려는 자들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려는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제는 자신이 메시아임을 완전히 드러내시고 왕이 되셔서 유대를 로마로부터 독립시키시고 떡과 물고기로 먹여주시고 저들을 안전하게 보호하시며 먹고 잘살게 해주실 것이라 믿으며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맞으러 달려 나온 것이다.

예수님께서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15)라고 예언된 말씀과 같이 나귀 새끼를 타고 나타나신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이 타시기에 어찌 나귀 새끼가 합당하겠는가? 스가랴 9 9절에는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신 이유는 그가 겸손하시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이 나타나시자 무리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스라엘의 왕이시여!”라고 외친다. 다른 복음서에는 사람들이 겉옷을 벗어 예수님이 오시는 길에 폈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길에 폈다고 한다. 예수님을 맞는 무리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자신들의 왕이 되실 것을 진심으로 믿고 기대하며 기쁨으로 호산나를 외쳤다. 하지만 저들이 원하는 왕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과 같지 않고 저들이 기다리는 메시아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와 같지 않다. 예수님은 저들의 기대와는 달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려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호산나를 외치던 입으로 예수님을 박으라고 외칠 것도 저들은 모른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모든 물과 피를 흘려주셔야만 저들이 살아날 있다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죽고 부활하신 후에야 일이 성경에 예언된 대로 이루어진 일임을 깨닫게 된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영적 세계에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일하고 계신다.

 

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표적이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데없다 보라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하니라 (18-19)

 

나사로가 부활하던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를 위로하러 나사로의 집을 방문했다는 말씀이 11장에 나온다. 많은 유대인이 그날 시간에 그곳에 것은 일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러 모으셨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따라 자신들이 그곳을 방문하게 되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자기가 가고 싶어서 갔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영적 눈을 뜨고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과 환경을 움직이셔서 마르다와 마리아를 위문하러 가도록 하셨다는 것을 있다. 하나님께서 그들로 나사로를 살리시는 예수님의 표적을 목격하게 하시고 돌아가서 많은 사람 앞에 증언하게 하셨다. 12 17-18절에 그들이 자신들이 목격한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증언했고, 그것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오신 예수님을 맞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나사로가 부활하는 표적을 통해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바리새인들이 자신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한 것들이 쓸데없을 만큼 세상이 예수님을 따른다고 서로에게 말할 정도였다. (19) 사람들은 없고 깨달을 없을지라도 하나님이 친히 일하심으로 말씀을 그대로 이루시며 구속사를 이어가고 계심을 성경이 알려준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세상에서 자기의 새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24-26)

 

헬라인 명이 명절에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고 한다. 자신들이 이방인이기에 예수님 앞에 직접 나가지 못하고 제자들에게 부탁한 것이다. 이방인인 저들도 예수님의 표적을 직접 목격하기도 하고 소문으로 듣기도 해서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했을 것이다. 예수님과 대화하며 그분에 대해 알아보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빌립과 안드레가 예수님께 그것을 말씀드리자, 예수님께서인자가 영광 받으실 때가 왔다라고 답하신다. (23) 아직은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지만 말씀은 이방인들에게 더욱 특별한 말씀이다. 이스라엘에만 주어진다고 믿었던 구원이 사실은 이방인들에게도 주어질 것이며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 후에 일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에게 이보다 좋은 소식이 어디 있겠는가?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찾아온 이방인들에게 소식으로 답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라고 말씀하신다. (24) 번째로,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을 이야기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이방인들까지 포함하여 세상을 구원하는 열매를 맺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말씀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어야 함을 말씀하신다. 사람들의 죗값은 죽음이기에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주시고 세상을 구원하시는 것이다. 번째로,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자신이 죽어야 열매 맺는 자가 있다고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십자가에 죽고 거듭남을 통해서만 열매를 맺는 삶을 있다. 번째로, 구원받고 거듭난 자로 땅에서 살아가면서 성령님을 따라 살며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열매 맺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날마다 자아를 십자가에 박는 죽음을 경험해야 함도 알려주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듭난 자로 세상에 살면서 예수님처럼 믿지 않는 영혼들을 위해 순교의 삶을 많은 영혼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열매를 맺을 있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생명이 생명을 낳께 되는 거듭난 자의 삶이다.

예수님은 이어서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25) 세상을 살아갈 동안 사람에게 주어진 생명은 영생이 아니다. 육신이 살아있을 동안만 주어지는 생명이다. 생명을 사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죄에 대하여 죽으면 영생을 얻어 거듭나게 된다 말씀하시는 것이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죄의 정욕에 따라 살며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여 죄에 대하여 죽으려고 하지 않는 자들은 영생을 얻지 못하고 임할 심판의 때에 이르러 영원한 죽음에 이를 것을 말씀하신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에 대하여 자신을 죽이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으로 거듭나서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을 얻게 것이다. 자신의 생명을 미워하여 죄에 대하여 죽어야 하나님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영생에 대하여 살아날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신다. 사람들은 죄로 죽어 영원한 형벌로 달려가는지도 모르고 세상에 동안 잠깐 주어진 생명과 육신의 정욕을 채우는 죄를 사랑하며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다. 십자가에 죽고 생명으로 살아나는 것을 거부한다. 그런 저들에게 영생을 얻기 위해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거듭나야 함을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을 섬기기를 원하면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신다. (26)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예수님이 본을 보여주신 대로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살라는 것이다. 예수님과 같이 죽고 부활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만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셨던 것처럼 똑같은 삶을 살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럴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예수님을 섬기는 자도 그곳에 있겠다고 하신다.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은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이며 하나님 나라이다. 예수님을 섬기며 예수님을 따라 세상에 살아도 영적 세계에 속한 삶을 있게 되고 세상을 떠나면 예수님이 계신 하나님 나라에 거라고 하신다. 예수님을 섬기며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신다고 하신다. (26)

 

지금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27)

 

예수님께서 자신이 죽으실 것과 그때가 가까이 왔음을 말씀하시고 마음이 괴롭다고 하신다. 마음이 괴롭다고 하신 말씀은 영어로는 my soul is troubled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의 혼이 괴롭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요한복음 13 21절에는 예수님께서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신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때는 영어로 troubled in spirit, 영이 괴롭다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영과 혼을 구분하여 말씀하셨음을 있다. 27절에 혼이 괴롭다고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함을 감당하는 것에 있어 온전한 사람이신 예수님으로 괴로움을 느끼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온전한 사람으로 성육신하셨기에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서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실 심적 고통을 겪으시며 괴로워하셨을 것이 당연하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런데도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27) 라고 고백하신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는 고통을 감당하시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사랑을 보여주신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28)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시며 이름을 영광스럽게 해달라고 말씀하시니 하나님께서 이미 영광스럽게 했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시겠다고 답하신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셨는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사시며 행하신 모든 것들을 자신의 것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것으로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것에 대해 감사기도를 드리신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보시지 않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심을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시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이고 자신은 하나님께 순종만 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고 밝히시며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신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시므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되는 것이다. 거듭난 크리스천들도 예수님이 하셨던 방법 그대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릴 있다. 하나님을 위해 자기가 뜻을 세우고 계획하고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 최선을 다해 무엇인가를 이룬다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 거듭난 자들도 자기의 뜻과 계획을 완전히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계시는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성령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룰 때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릴 있다.

 

이제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31-32)

 

47절에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고 구원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죄로 죽은 사람들을 죄로부터 구원하시려고 오셨다. 사람들은 구원하시고 세상에서 노릇 하고 있는 세상 임금은 심판하실 것이다. 죄와 어둠 가운데 권세를 잡고 죄에 빠진 사람들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온갖 거짓말과 두려움으로 저들을 종노릇시키는 세상 왕이 사탄을 멸하시러 예수님께서 오셨다. 사탄과 그에 속한 악한 영들은 어두운 세상을 주관하며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하도록 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며 영원한 죽음에 떨어지도록 하는 일을 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께로부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시며 사탄의 모든 일을 멸하시고 땅의 왕이 되실 것이다.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시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9 16) 그리고 사탄의 권세 아래 있는 모든 사람을 예수님께로 이끌겠다고 하신다.

에베소서 6 12절에는 크리스천들은 혈과 , 사람들을 상대하여 싸우지 않고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영적 세계에 속한 통치자와 권세와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의 악한 영들과 씨름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세상에 살아갈 동안,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전까지는 씨름을 계속해야 하지만 두려워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사탄을 심판하셨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들을 쫓아내며 이미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취할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탄의 모든 일이 이미 멸했음을 선포하기만 하면 된다.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인자는 누구냐 (34)

 

사람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부분적인 지식으로 모든 것들을 판단하려는 실수를 범한다. 그래서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믿지 못한다. 무리가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고 함을 들었다며 예수님께서 죽으셔야 한다고 하시니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없다고 한다. 자신들이 아는 율법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이 들은 가지 율법으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아님을 주장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사람이다. 무리는 이사야 53장에, 시편 22편에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 나와 있는데도 그것은 알지 못하고 인자가 들려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인자는 누구냐고 예수님께 묻는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교인들이 자신들이 읽었거나 들었던 구절 말씀으로 진리를 아는 것처럼 말하면서 성경 전체에서 말하는 진리를 왜곡하는 죄를 짓는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35-36)

 

예수님께서 죽어야 하는 인자가 누구냐고 묻는 무리에게 빛이신 자신에 대해 말씀하신다.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많은 표적을 행하시고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가르치시고 사람들의 죄를 드러내셨다. 또한 자신이 오실 메시아이심도 밝히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귀신 들린 자로, 신성모독 하는 자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자로 여기며 영적 지도자들과 함께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 예수님께서는 저들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말씀하신다. 저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박기 전에 빛이신 예수님께 나와 예수님을 믿음으로 어둠에 붙잡히지 말라고 하신다. 예수님께서 땅에 오셔서 구원을 이루고 계시는 것처럼 사람들은 없지만 어둠이 사람들로 빛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도록 사람들을 붙잡아 어둠에 다니게 하며 영원한 죽음으로 끌고 가고 있는 것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 영적 눈이 열리지 않고는 없는, 영적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예수님을 믿어 빛의 아들이 되라고 하신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자들은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5 14) 부활하셔서 승천하실 예수님을 대신해서 세상에 빛을 발할 빛의 아들들이 되라고 사람들을 부르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지금도 빛의 아들들을 부르신다.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시기 전까지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운데로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을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 있다. 정확히는 각자에게 주어진 세상에 사는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주어진 시간이다. 육신이 죽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면 영원한 죽음에 떨어지겠고 세상에 동안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는다면 빛의 아들이 되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며 살다가 하나님 나라로 가게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죽음을 앞두시고 무리를 부르신 것처럼 우리도 주위에 아직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까지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것이 빛의 아들들이 자들이 빛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때문이니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39-40)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많은 표적을 보고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저들을 피해 숨으신다. 요한은 38절에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라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며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 나와 고침을 받을 자가 많지 않을 것에 대해 이미 성경에 기록되어 있음을 알려주신다. 또한 많은 사람이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알려주신다. 이사야의 말씀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깨닫고 돌아와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시려고 저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도 말씀에 예언된 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요한이 인용한 이사야의 말씀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다는 뜻을 오해하지 말고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있는 사람들의 눈을 일부러 멀게 하셔서 보던 것을 보지 못하게 하시고 부드러운 마음을 일부러 완고하게 하셨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들은 애초에 영적 눈이 멀었고, 죄로인해 마음이 완고해졌다. 하나님께서 저들의 보지 못함과 완고한 마음을 그대로 내버려두셔서 저들이 예수님을 만나고도 믿지 않게 하셨다는 뜻이다. 저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은 저들의 때문이지만 하나님의 구속사 안에서 저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으로 인해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해지며 세상이 구원받게 되기 때문에 저들의 믿지 않음 역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해석할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구속사를 이루시기 위해서라도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거스르는 일은 하실 없기에 하나님의 일하심은 항상 사랑에 근거하며 의롭고 공의롭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랑하였더라 (42-43)

 

많은 유대인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지만 관리 중에도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믿는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바리새인들에게 출교를 당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또한 저들이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로부터 자유를 얻지 못한 사람들의 믿음은 여전히 육에 속해 있기에 자기를 사랑함과 세상과 죄를 사랑함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설 없는 믿음이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찾으면 하나님을 만날 있는 (예레미야 29 13) 믿음이지만 거듭난 자에게 주어지는 믿음은 아니다. 로마서 1 17절에 복음의 능력으로믿음으로 믿음에 이른다라는 말씀이 설명하듯 오직 복음의 능력으로 비로소 의인의 삶을 있는 믿음을 갖게 된다.  

 

사람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내가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47-48)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외치신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예수님이 아닌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예수님을 보는 자는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보는 것이라고 사람들을 향해 외치신다. (44-45) 지금은 예수님께서 죽고 부활하시기 전이기에 거듭날 있는 구원의 길이 아직 열리지 않았다. 예수님께 나아가기 위해 저들에게 필요한 믿음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다. 저들이 믿는 하나님께서 성경에 말씀하신 예수님을 보내셨음을 믿는 믿음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외치시는 말씀의 뜻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음을 믿을 있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에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믿을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지 않기 때문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을 없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저들을 인도하여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성령님께서 오신 후에 저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게 하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사람들로 빛이신 예수님을 믿고 어둠에서 가운데로 나오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신다. (46) 세상 모든 사람은 죄로 죽어 어둠에 거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만이 어둠으로부터 구원받을 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고 세상을 구원하러 오셨기에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지 않아도 그들을 심판하지 않으신다고 하신다. (47) 하지만 마지막 심판받는 날이 것인데 그때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시고 가르치신 모든 말씀이 심판자가 되어 예수님을 믿지 않고 말씀을 받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신다. (48) 성경에 기록된 예언과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선포하신 복음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온전하게 이루어질 것인데 그때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서 복음의 말씀을 믿는 자들은 구원받을 것이고 믿지 않는 자들은 심판받아 영원한 죽음에 떨어지게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마지막 믿지 않는 자들을 심판할 말씀은 예수님께서 스스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명령하여 주신 말씀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은 영생이라고 하신다. (49-50)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따르는 자는 영생을 얻게 것이며 예수님을 믿지 않는 , 복음의 말씀을 믿지 않는 자는 영생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형벌인 영원한 죽음에 던져질 것이라는 뜻이다.